
초대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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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팀 크립톤의 첫 프로젝트 <마믅소리>는 장애물에 부딪혀 반사하여 다시 들리는 현상 '반향(反響)‘의 순우리말을 뜻합니다. 서로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소통되지 못하는 오류를 기술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기존 미술 전시와 작품의 주-감각인 시청각을 다른 감각으로도 번역, 대체, 보완하여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며 다른 감각과의 소통을 시도합니다. 이러한, 크립톤의 기획 의도는 오민수, 염인화 작가의 작품을 통해 소통되지 못하는 사회적 경계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데에 있습니다. 또한,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미디어 예술에 대한 동시대적 고찰과 더불어 기술이 예술을 만나고, 다양한 층위의 장애를 만나는 과정에서 서로의 소리를 주고받아 공명하고 발화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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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테크놀로지,
다시 찾은 아날로그 시계의 시침
● 정일주 「퍼블릭아트」 편집장
디지털 기술은 시각적, 청각적인 각종 콘텐츠를 0과 1로 바꾸어 놓으면서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시간의 흔적이 없는 이 디지털 파일들은 사람 손때가 묻을 리 없고 철저하고 완벽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죽지 않고 디지털 코드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의 환경은 흠집이 나고 흔적이 묻는 아날로그가 발견되기 최적화된 시간과 장소가 되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물음이 떠올랐다.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신체장애에 득일까 독일까?’ 테슬라의 누군가가 이 질문을 듣는다면 당신은 바보냐고, 자율주행이나 IOT가 이미 그 답을 명확하게 주고 있지 않냐며 윽박지를지 모른다. 인정한다. 일상을 둘러싼 산업 전반의 기술 발달은 확실히 장애와 비장애를 동시에 아우르며 그것의 간극을 좁히려 노력하고 있고 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예술은 어떤가? 산업 기술보다 어쩌면 반 발자국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미술 속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신체장애에 득이냐 다시 묻겠다. 메타버스와 NFT로까지 변모하는 비물성 기반 작업(non-object based work)들이 시각이나 청각장애인에게 온전히 가 닿을 수 있느냐 말이다. 불과 얼마 전 명화를 입체로 재현해 시각장애인도 감상할 수 있는 기술이 도입됐단 뉴스가 보도됐는데, 전광석화와 같은 기술의 발전은 과연 장애와 비장애 상관없이 미술을 즐기게 만들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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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톤 또한 딱 이런 질문에서 기획을 시작했다. 예술과 기술 미디어 사이 간극에 공통의 관심을 갖고 다양한 감각을 교차 번역해 소통의 접근성 향상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기획팀 크립톤은 예술과 기술을 묶는 융복합이란 단어가 모두에게 유효한 것인가 되묻기 이르렀다. 장애 운동가와 장애인들이 전복한 언어로, 모든 장애적 경험이 함축적으로 담긴 단어 ‘Crip’으로 콜렉티브 이름을 붙인 그들은 미디어 예술에 대한 동시대적 고찰과 함께 소통되지 못했던 각기 다른 층위의 장애적 경험을 이야기하는 오민수, 염인화 작가를 전시 <마믅소리>에 초대했다.
기계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지니게 된 주체성을 이야기하는 작가 오민수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매스미디어를 만드는 기계의 소리를 중첩된 감각으로 드러내는 <신기술 : 흐름⦁작동⦁보통⦁중립⦁접지>를 선보인다. 소위 좀비 미디어라 불리는, 고장 나거나 새로운 제품에 밀려 더는 사용하지 않는 가전과 산업제품을 수거해 본래 기계가 가지고 있던 필연적 소음, 인슐레이션이라는 장치를 사용하여 통제하고 제거해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기계의 소리를 사운드아트로 재매개한 작품이다. 모터 혹은 태엽 같은 소리를 전면으로 끌어내는 작품은 아날로그가 더 이상 디지털 이전의 기술로만 읽히지 않는 지금, 새로워진 아날로그를 경험하고 탐구하고 싶은 욕구를 부드럽게 자극한다. 또 한편으로 오래전부터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서로에 대한 참조와 하이퍼매개로 인해 구축해 온 혼종의 세상을 사는 우리로 하여금 변화의 소용돌이를 새삼 실감케 한다.
그런가 하면 염인화 작가는 <찬드라 X,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AR-VR 이종현실 연동 기반 확장현실, PC, 프로젝터, 키보드, 마우스, 영상-설치)>을 통해 시지각적 의지와 비의지의 경계가 무력화된 상태를 제시한다. 동시대 디지털 노동 지형을 그리는 작품은 오로지 관람객들을 통해 변주, 완성되는 형식으로 도안됐다. 그도 그럴 것이 가상과 현실, 장치와 관람객, 퍼포머와 관람객 그 무수한 사이의 틈새들 속에서 (비)자발적으로 수행되는 퍼포먼스야말로 작가가 천착해 온 주제이기 때문이다. 웹 기반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상호 연동된 확장현실 기술로 구축한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현실을 가로질러 서로의 경험에 실시간으로 연결-개입하고 또 수행-행위하는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에서 인간의 좌표를 그려보는 철학자처럼, 작가는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삶을 전면으로 압도하는 시대에 갖는 예술적 상상, 미래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고 과거를 통해 미래와 만나는 그 이상의 지대를 장애와 비장애를 초월한 모두에게 제시한다.
이렇듯 재매개의 테크놀로지 특성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활용하기도 하고 허구성을 폭로하기도 하면서 테크놀로지에 대한 사유를 펼치는 두 작가의 작품은 느림의 잠재력을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그들은 디지털을 만난 아날로그가 감성적 의미를 내포한 언어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재현하며 완벽하지 않은 어떤 것이 가진 실체성이 사람들의 정신적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메타포로 작동하고 살이 부딪히는 신체적 상호작용이 가능한 체험의 장을 형성함을 증명한다. 디지털이 주는 효율, 편리, 빠름의 기계화에 상대적으로 이 두 작품은 더 섬세하고 따뜻한 인간 중심적 가치를 느끼게 하는 의미가 된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1937년 현대 과학기술의 위협에 직면해 「기술에 대한 논구」를 발표했다. 20세기 초 가공할만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목도하며 철학자가 해야 할 일이 형이상학적 관념을 사유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뿐 아니라 그 존재가 살아가는 특정한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을 이해해야 된다고 믿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의 본질이 전혀 기술적인 것이 아니기에, 기술에 대한 본질적인 자각과 기술의 결정적 대결은 한편으로는 기술의 본질과 가깝게 관련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그런 어떤 영역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영역이 예술이다.”
20세기 전반을 겪으며 하이데거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자들이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상실하고 한낱 계산 가능하고 처분 가능한 에너지 집합체로 전락했다 강조했는데, 사실 우리의 지금은 그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오로지 희망적인 것은 기술의 힘을 누구보다 인지하고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할 것인가를 고심했던 그때의 철학자처럼 기술에 대한 도구적 규정을 넘어 기술에 대한 본질적인 자각을 시도하는 작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기술이 예술을 만나고 여러 층위의 장애를 만나는 과정에서 서로의 소리를 주고받아 공명하고, 경계를 허무는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뜻으로 발화되길 바란다”는 크립톤의 포부는 조금도 허황되지 않다. ■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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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수, 신기술 : 흐름 작동 보통 중립 접지ᅵ냉장고ᅵ세탁기ᅵ청소기ᅵ성경ᅵ아두이노ᅵ혼합매체ᅵ 가변설치ᅵᅵ흐름 작동 보통 중립 접지 시간 15분 ᅵᅵ매시 정각 작동 및 상영ᅵ
기계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지니게 된 주체성을 이야기하는 참여작가 오민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아버지의 목소리와 매스미디어를 만드는 기계의 소리를 중첩된 감각으로 드러냅니다. 또한, 좀비 미디어라 불리는 고장 나거나 새로운 제품에 밀려 더는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과 산업제품을 수거하여, 본래 기계가 가지고 있던 필연적 소음이 인슐레이션이라는 장치를 사용하여 통제하고 제거해 들을 수 없었던 기계들의 소리를 사운드아트로 재매개합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아버지의 목소리, 성경의 구절, 기계의 소음 속에서 관객이 새로운 감각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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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수 작가의 작품 작동원리
먼저 고장난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등을 수집합니다. 수집된 중고 가전 기기들을 분해한 후 분해된 잔해들을 케이스부터 내부 회로까지 천장에서 벽으로 이어 설치합니다. 분해되어 재조립된 중고 가전 기기들은 기계 고유의 해방된 소리를 냅니다. 이 소리들을 네 대의 마이크가 수집합니다.
잘려진 성경 한쪽 면에 빛을 비추면 두 장이 겹쳐져 해독 불가능한 형태가 됩니다. 이 도려낸 성경의 장들은 거대한 기계 장치의 설명서, 혹은 조립 안내문과 같이 보일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의 송출입니다. 영상, 기계, 아버지의 목소리가 서로 번갈아 가며 송출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하였기 때문에, 관객은 이 소리들이 마치 서로 대화하는 것과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한쪽 벽에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신문공장에서 찍은 영상이 영사됩니다. 이 영상에서는 신문공장 기계들의 소음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쪽 벽에는 도려낸 성경의 장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녹음한 자료에서 발췌한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신문은 살아있는 거라 생각하면 돼. 종이는 종이지만 하나의 살아있는 종이 또는 살아있는 생선이라 생각하면 돼. 생선이 시간이 많이 지나면 죽듯이 이 생선이 살아있을 때 가야 하는 거야. 신문을 제시간에 지국에 갖다 줘야 되는 거야. 이렇듯 민감한 거야. 아무 때나 갖다 주면 되지 그게 아니라 지국에 원하는 시간에 제때 갖다줘야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거야. 기계든 사람이든 혼연일체가 돼야 해”
매스미디어인 신문(어쩌면 가장 세련된 언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매체)이 제작되는 소음이 아버지의 더듬는 소리와 겹쳐질 때, 관객은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염인화, 찬드라 X,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AR-VR 이종현실 연동 기반 확장현실, PC, 프로젝터, 키보드, 마우스, 영상-설치), 가변크기
융합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한 확장 현실(XR)의 연구자이며 미디어 아티스트인 염인화 작가는 찬드라X를 통해 3D 기술 환경에서 시지각적 의지와 비의지의 경계가 무력화된 상태 속 특정 행위를 수행하는 동시대의 디지털 노동 지형을 그립니다. 그가 구축한 가상의 공간에서는 권한과 권력이 중첩하고, 전시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조작하는 수행적 요소들을 이용하여 행위자들이 서로 연결 장애를 겪는 경험을 참여형 퍼포먼스로 치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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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인화 작가는 <찬드라 X>의 매체를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이라 부릅니다. 이번 버전의 장치-환경은 웹 기반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상호연동된 "확장현실" 기술로써 구현되었습니다. 관객들은 이종 기기 네트워크 환경 속 이종현실들을 가로질러 서로의 경험에 실시간으로 연결-개입하고, 또 수행-행위에 대한 상호작용과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염인화 작가의 전시장 내 관람 방법
전시장 입구 쪽 벽면에 프로젝션된 가상현실 작품은, 작품 바로 앞 바닥에 설치된 화살표 키보드와 마우스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찬드라X는 이 장치-환경에 이미 접속한 자의 움직임과 시선에 동기화되어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또, AR 관람보조장치 화면상 실물 작품 근처에 증강되는 행성 객체들을 터치하면, 가상현실 프로젝션에 어떤 피드백을 발생시킵니다. 여기서 AR 관람보조장치는 관객이 작품에 또 방식으로 연결, 개입할 수 있는, 어떤 "수행-증강 장치"로서 기능합니다.
온라인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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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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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톤(공식 인스타그램 링크)은 정민주, 염인화, 황수경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기획팀입니다. 예술과 기술 미디어 사이 간극과 사회적 소통에 대한 공통의 관심 주제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감각을 교차 번역하여 교감하고 소통하기 위한 접근성 향상을 연구합니다.